To. 연희아빠

앵두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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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엄마 2019.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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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아빠!

어제는 완희한테 갔다가 너무 피곤해서 한두 시간만 자고 온다는 게,
아침까지 내처 자다가 오늘 에야 우리 집에 왔네요.
집 어귀를 돌다가 바로 옆 공원 위쪽에 서 있는 앵두나무를 바라보다가
문득 예전에 당신과 함께 우리 하빈이랑 수빈이를 키울 때, 그 열매가 하도 예쁘고도 탐스러워서
그 나무를 심은 2층 할아버지께 허락을 받아 아이들에게 직접 한 웅큼쯤만 따 보게 해서 맛도 보여 주었는데,
이젠 그 할아버지도 연로하셔서 충청도에 사는 아드님 댁으로 내려 가셨다는데 통 소식은 알 수 없고요.
그냥 옛날 생각에 잠겨 있다가 가만히 다가가 들여다 보니 다닥다닥 열린 앵두에 제법 붉은 물이 들어 가고 있더군요.
조금 있으면 그 열매들은 온통 빨가니 변하고 통통히 살이 올라 마치 작은 알사탕 같이 어여쁠 텐데요.
연희아빠!
지난주엔 아주 큰 사고가 또 일어났답니다.
그것도 먼 헝가리의 강물에서 유람선이 추돌당해 우리나라 여행객 삼십여 명이
목숨을 잃거나 실종된 상태에 있고 겨우 일곱 명만 구조되어 살아났다니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TV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가, 갑자기 큰일을 당한 그들과 가족들의 황망함을 생각하니
너무 안타깝고 속이 상해 한참을 펑펑 울어버렸네요.
그런데다가, 매일 아침저녁으로 이 홈페이지에 들어와 글을 읽는 버릇대로
어느 분이 새로 올린 글을 읽다가 또 가슴이 무너져내려 연거푸 울고......
부친을 그곳에 모시고 집에 돌아와서 바로 쓴 아드님의 글로
자신이 꼭 시험에 합격하여 아버지께 보고드리겠다는 다짐의 내용이었지만
난 그 분의 속마음이 그대로 느껴져 어찌나 안쓰럽던지요?!
당신의 주검을 앞에 놓고 염을 하던 그때에 하염없이 눈물을 쏟던
완희의 그 모습과 마음이 너무나도 닮은 것 같아서요.
그런 완희가 요즈음 또 진로에 대해 갈등하고 있어요.
회사를 그만두어야겠다고 작년에도 그랬을 때는 내가,
대책은 뭔데? 라고 되물었지만 이번에는 제가 결단한 대로
그게 정답이라 여기고 수긍하려고요.
포기만 안 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말을 난 믿으니까요..

연희아빠!
그리고 지난 토요일엔 연희의 갑작스런 문자를 받고 생각지도 않은
가수 김건모의 야외 콘서트장엘 다녀왔습니다.
저희 동네인지라 제 친구들과 일찍이 좋은 자리를 잡고 앉아서 나를 불렀지만
택시를 타고 부랴부랴 달려가서 보니, 어찌나 많은 사람들이 왔던지
도저히 찾을 수도 들어갈 수도 없어서 그냥 입구에 선 채로 가수의 옆 모습만 보고 왔네요.
다리도 아프고 피곤하여 잘못된 만남이란 곡만 듣고 나오려 했는데
그 곡을 맨 나중에 불러서 결국 끝까지 다 보고 왔습니다.
그도, 그의 아버지 상을 당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미 그 전에 약속한 자리였기에 그냥 진행한 거라고 하더군요.
반쪽이 된 얼굴로 열심히 노래를 불렀지만, 사실 그로서는 그게 일을 하는 거잖아요?
그의 모습 위에 저절로 조 서방이 오버랩되어 보였고요.
병원의 환자가 하루에 60명만 오면 좋겠다고 하는데 요새는 백 명이 넘게 오는 바람에
아예 끊을 수밖에 없는 게, 즐거운 고민이라고 하더라고요.
결코 건강하지 않은 자신의 힘에 부치는 상황이니까요.
자기 환자에 대한 뒷얘기는 집에서라도 절대 꺼내지 못하게 하는
조 서방의 환자에 대한 사랑을 보고 감탄을 한 적이 있습니다.
몸이 아픈 사람은 마음도 아프기 때문에 무조건 이해를 해야 한다는......

연희아빠!
얼마 전에는 하빈네 집의 거실이며 방이고 온 집안이 싱싱한 화초들로 가득한 꿈을 꾸었어요.
식물을 가꾸는 기술은 전혀 없는 애가 웬일일까 하고 난 속으로 놀랐고요.
그 얘기를 듣고 확신을 얻어 하빈어미가 근간에 벼르던 집을 사기로 맘먹고 계약을 하였다네요.

우리 노인네들 사이에서 하는 말로 가장 크게 효도하는 자녀란, 자동이체로 돈을 보내주는 자식이라고 해요.
난 저에게 해 준 것도 별로 없는데, 꼬박꼬박 돈을 부쳐 주는 그 마음이 어찌 축복을 받지 않겠나 싶어요.
하빈어미 사진은 마땅한 게 없어서 그리지를 못 했는데, 마침 지난봄에 벚꽃 아래에서 찍은 사진이
그럴듯하기에 요새 그림을 완성했네요. 이제 아이들 모두를 그림으로 남겼으니 맘이 편합니다.
내가 이 세상에 없더라도 그 그림들을 보면 엄마, 할머니의 좋은 선물로 기억하겠지요.
연희아빠!
오늘은 정말 수다를 몹시 떨었네요.
생각이 많은 날들을 보냈더니 말도 많아지고요.
당신께로 향한 나의 감정들.
슬픔, 미움, 아쉬움, 그리움, 냉담, 화, 삐침, 잔소리, 들......
그러나 그 모두를 합치면 사랑입니다.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