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연희아빠

겨울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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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엄마 2020.01.07
조회수 : 883 총공감수 : 11
연희아빠!
이제 2020년으로 들어섰고 계절상으로 한겨울인데도
마치 여름 장마 때처럼 하루 종일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네요.

난 요즈음 완희네로 옷가지며 짐들을 옮기고 그 애네 집에서 거의 지내고 있답니다.
지금은 비워둔 우리 집이 걱정되기도 해서 들렀다가 오늘은 여기에서 자고 갈 것이라
오랜만에 당신에게 편지를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연희아빠!
완희는 우여곡절 끝에 회사 일을 잘 마무리 짓고
마지막으로 회장님과도 식사 자리를 가졌던 것으로 무난히 끝을 맺었습니다.

제 나름대로 고심한 끝에 내린 결정이겠죠.
남자 전문 머리 컷트점인 부루 클럽을 창업한다며 미용학원에 등록해서
자격증을 따기 위해 매일 네 시간씩 교육을 받고 온답니다.
전혀 생뚱맞은 일이라 저도 웃음이 나는지 교육 받는 장면을 가족 단톡방에 올려
우리 모두 함께 웃곤 하네요.
손재주가 있는 아이니 그것도 너끈히 잘 해낼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연희아빠!
며칠 전에는, 일부러 아주 몹시 추운 날을 택해서 함 선생님 댁에 놀러 갔다 왔어요.
거실 벽난로에서 나무 태우는 냄새와 구운 고구마를 얻어 먹고 오고 싶었는데
선생님이 뒷산으로 나무를 하러 갈 기운이 없어 땔감을 못 구한 탓에
그냥 안부 여쭙는 발걸음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알뜰살뜰 차려 주신 밥상은 여전히 맛있었고요.
봄에 진달래꽃이 피었을 때 다시 오마고 약속하고는
버스 정류장까지 배웅을 받고서 헤어졌어요.

연희아빠!
이달 18일에 드디어 우리말 겨루기 예선에 나가려고 맘먹고 있습니다.
지난 출연 이후, 2년을 기다려 온 터라 심기일전해서 준비를 해 왔지만,
한편으로는 어쩜 내가 선택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크게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난 다른 사람보다 여러 번 출연할 기회를 얻었었으니까요.

연희아빠!
그리고 또 하나, 너무나도 안타까운 소식을 전할게요.
조 서방 병원의 어느 간호사의 초등학생 딸이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져서
지금 중환자실에 있다는군요.
어떻게 그리도 어린 아이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그래서 연희는 병원에 나가야 하고 하빈이, 수빈이는 이제 겨울 방학이라
내가 드나들며 집안일이며 애들을 챙겨주고 있네요.
완희는 시쳇말로 삼식이가 되어서 하루 세 끼를 꼬박 차려 주어야 하고
그야말로 내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답니다.
언젠가는 이 일도 끝이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치뤄냅니다.

오늘 낮엔 당신과 똑같은 상황으로 남편을 떠나보낸 친구에게 불려 나가서
근사하게 점심을 대접받고 왔네요.
참으로 열심히 살아오며 자녀들도 모두 훌륭히 키워낸 자랑스러운 친구예요.

연희아빠!
하빈이가 오늘 고등학교 1학년을 마감하는 방학을 하며
담임 선생님과 친구들의 만남을 가졌었나 봐요.
그런데 갑자기 어느 한 아이가 울음이 터지면서 선생님과 모든 친구들이
울음바다를 만들었다는군요.
미혼인 여자 선생님이신데, 반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 추억을 만들어 주시는 등
하빈이를 통해서 그동안의 학교 생활을 계속 들어왔기 때문에
그들의 헤어지는 허전함이 그대로 느껴져서 가슴 한편이 짠합니다.
사람 잘 만나는 것도 큰 복인데 하빈이는 참 인덕이 있는 아이인가 봐요.

연희아빠!
너무 피곤한지 자꾸 눈이 감기네요.
잘 있어요.
잘 있어요.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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