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얼 人· 禮 · 通]‘축제’처럼 죽음 맞이하리
2007.06.14 조회수 4426
〈엘리자베스 타운〉이란 영화를 보다 눈이 번쩍 띄는 장면을 만났다. 내가 좋아하는 중년 여배우 수전 서랜던이 남편의 장례식에서 탭 댄스를 추고 있다. 장례식을 위해 모인 이들이 그의 발랄한 몸놀림을 지켜보며 미소 짓는다. 남편과 함께했던 시간들에 대한 사랑과 감사를 담아 무대 위에서 검은 바지 정장 차림으로 춤추는 그. 이어지는 록 콘서트. 와우, 신선하다.



나도 장례식 구상에 돌입한다. 내가 죽으면 유골은 가루로 만들어 대구 집의 나무 아래 뿌려달라고 이미 아이들에게 부탁해둔 터. 종교와 인연이 없으니 내 장례식은 작은 파티 형식으로 진행되었으면 좋겠다. 전혀 엄숙하지 않게. 딸에겐 판소리 한 자락을 부탁할 참이다.



선배 한 분은 오케스트라를 불러 연주를 하게끔, 이미 오래 전부터 자신의 장례식 포맷을 잡아 놓고 있다. 웬 오케스트라 연주냐고 의아해할 사람도 있겠지만 애도와 축하 사이의 균형이 관건이겠다. 애도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의 허전함을 달래려 함이고 축하는 지상의 모든 짐을 벗어놓고 떠난 이의 해방을 기념하기 위함이니 말이다.



친구들 모임에서도 죽음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에 대한 토론이 가끔 벌어진다. 요즘 몇몇 사회단체에서 주선하는 죽음 예비학교에 등록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온다. 언제 우리를 찾아올지 모를 죽음이라는 상황과 미리 낯을 익혀두는 게 나름 유익할 것 같다. 지금 건강하다 해도 무릎관절염을 시작으로 우리는 병과 차츰 친해지고 있다. 크고 작은 수술을 거친 친구들은 이미 앓아본 사람의 지혜로 유병장수 시대를 살아가는 건강 전략을 서로 나눈다.



이렇듯 이미 일상 속에 죽음은 조금씩 얼굴을 드러내고 있는 것을 모두 안다.



웰빙 못지않게 ‘웰 다잉’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는 것, 참 다행이다. 어떻게 하면 잘 죽을 수 있을까? 행복한 죽음이란 불가능한 것일까? 죽음에 대한 최선의 준비는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지금 이 순간의 삶에 집중하는 것이겠지.



내 생애 몇 번의 벚꽃놀이가 더 허락될 것인지 생각하며 바라보는 올봄 벚꽃은 전율이다.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