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얼 人· 禮 · 通]상실 치유컬럼 #5_슬픔의 고통과 마주하기
2019.07.29 조회수 7695

안녕하세요. 분당메모리얼파크입니다.
저희 홈페이지 '상실 치유컬럼'에 다섯 번째 글이 발행되어 소개 드립니다. 

 

 

 

 

한국에 들어와 애도 상담 전문가 과정을 시작한 지 벌써 3년 반이 지났다. 그간 100여 명의 전문상담가를 양성하였다. 1년이라는 긴 교육 과정 중에는 상담사 자신의 상실 슬픔을 다루는 시간이 있다. 이를 통해 자신의 사별 감정을 나누는 것이다. 이때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자신이 겪은 상실을 새롭게 이해하고 뒤늦게나마 애도의 과정을 보내기도 한다. 이렇게 교육 과정 중 상실 경험 나눔을 필수로 하는 것은 상담자 자신이 먼저 참된 애도를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상담자의 미해결된 애도의 과제는 실제 상담의 자리에서 비슷한 유형의 상실을 가진 내담자를 만나게 됐을 때 상담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의 일이다. 상담사들을 위한 ‘상실 경험 나누기’ 시간이 있는 날이었다. 한 분의 상담사가 조용히 내게 와서 말했다. 자신은 아직 상실 경험을 나누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남편이 죽은 지 2년이 지났는데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아직 많이 힘들다고 한다. 준비가 안 된 사람에게 억지로 상실 경험을 나누게 할 수는 없었기에 다음에 준비가 되면 하라고 했다.

 

몇 주가 지나 사별 애도 집단상담 훈련이 있는 날이었다. 집단상담 훈련은 조별로 진행이 되며, 실제 상담에 참여한 것처럼 자신의 상실 경험을 나누게 된다. 이 날은 ‘그 사람에 대한 모든 것’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고인에 대한 추억과 그가 내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등 몇 가지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 훈련이 시작되고 10여 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다시 그분이 내게로 와서 조용히 요청했다. 자신은 도저히 질문들에 답을 할 수가 없고, 아직 감정을 나누기 힘들다며 집에 가고 싶다고 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눈 후, 그분은 전문 상담가가 되는 것을 포기한 채 자리를 떠났다. 그의 상실 경험을 듣지 못했기에 어떤 상황에 처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직까지 사별 슬픔의 고통을 마주하는 것을 회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감정인지는 모르지만 감추고, 억눌려진,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있는 것이다. 상담사가 되려는 사람에게 있어서 자신이 겪은 상실을 직면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일반적으로 상담사의 길을 택하려는 사람들 대부분은 자기 상처가 있다. 그 상처를 다른 상처 받은 사람들을 돌보고 치유하는 형태로 해결하려는 무의식적인 욕구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채 다른 사람을 상담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종종 듣는 말 가운데 “상담사는 상담이 필요한 사람들”이라 한다. 상담을 받으러 갔다가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더 상처받고 오는 경우도 있기에 이런 말을 하는 것 같다. 그러기에, 원활한 상담을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 치유가 필요하다. 더군다나 사별 애도를 다루는 전문상담가들에게 있어는 자신의 사별 감정을 다루는 일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중대한 상실로 인해 슬픔과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도 자신의 감정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하는 것이 필요하다. 충분히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 채 시간만 흐른다면 복잡한 애도의 과정을 겪게 될 가능성이 크다. 즉, 오랜 기간 사별의 고통이 지속되거나, 감정 표현이 지연되다가 우연한 계기에 다른 상실을 만나 주체할 수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또는 신체적인 문제나 부적절한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자녀를 잃은 부모의 슬픔과 치유에 관한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아홉 명의 부모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다. 자녀들의 죽음 유형은 다양했다. 자신의 집 수영장에 빠져 죽은 아이, 바닷가에서 친구의 목숨을 구하고 자신은 나오지 못한 아이, 집에서 살해당한 아이, 말기 질환으로 인해 죽은 아이들도 있다. 죽음의 유형이 다양한 것처럼, 부모들이 겪은 슬픔의 과정도 각기 다양했다. 부부라 할지라도 똑같은 방식으로 애도의 과정을 보내지 않는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연구결과, 그들은 몇 가지 공통된 점이 있었다. 그중에 한 가지는 이들 중 대부분은 자신의 슬픔과 아픔을 넘어서서 다른 사람들을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상실 초기 아이가 죽은 의미와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냈다. 절망과 고통 가운데 소리치고 울부짖었다. 그렇게 구하고 찾는 과정 속에서 그들은 변화의 계기가 될 만한 어떤 순간을 만나게 된다. 그를 통해 회복이 시작되고 삶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또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을 통해 혹은 글을 통해 누군가에게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할 수 있는 치유자로 서게 된다. 어떤 부모는 상담을 공부하면서 전문적인 도움을 주고자 하여 상담대학원에 입학하기도 했고, 어떤 분들은 신앙공동체에서 아픔을 겪는 사람들을 돌보는 일에 사명을 다하는 분도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성가인 헨리 나우웬(Henri Nouwen)은 이를 ‘상처받은 치유자’(Wounded Healer)라 표현하였다. 자신이 겪은 상실의 슬픔과 고통이 치유되는 과정을 경험하면서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사람을 말한다. 고통 가운데 얻은 상처는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는 가장 큰 원천이 된다. 절망 가운데 울부짖었던 그들의 처절한 몸부림과 의미를 찾고자 노력들은 헛된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과 세상을 치유하기 위한 자원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감추고, 억누르고, 회피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드러내고, 표현하고, 마주할 때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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