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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얼 人· 禮 · 通]상실 치유컬럼 #17_애도와 용서 |
2021.10.21
조회수 2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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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홈페이지 '상실 치유컬럼'에 열 일곱번째 글이 발행되어 소개드립니다.
관계가 원만하지 않았던 가족이나 친구 또는 지인이 죽었을 경우 후회와 죄책감으로 힘든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게다가 해결되지 않은 분노가 남았다면 더 괴로울 수 밖에 없지요.
이번 컬럼은 건강한 애도와 점진적인 용서의 과정을 통해 사별의 슬픔을 치유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용서는 가해자의 참회 없이도 가능하며 그러기에 죽은 사람도 용서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컬럼을 참고하세요.
- 본 상실 치유컬럼은 애도상담 전문가 윤득형 박사님의 기고로 홈페이지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슬픈 것이 아니다. 오직 내가 사랑한 사람, 그리고 나에게 선한 영향력을 준 사람의 죽음만이 내게 슬픈 일이다.
하지만 대부분 잘 알지 못하는 개인의 죽음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법적으로 맺어진 가족의 경우는 어떠한가?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고부간의 갈등이 심하다. 서양의 문화에서도 유사한 일들이 벌어지지만, 우리나라처럼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은 것 같다. 부모에게 받은 사랑은 많은데 살아가면서 부모에게 갚으며 산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사랑은 내리사랑이라는 말이 있는가 보다. 하지만, 부모가 죽고 난 후에 깨달아봤자 소용없는 일이다. 이는 ‘나무는 고요 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은 부모를 봉양하려고 하나 기다려 주지 않는다’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반적인 모습과 달리 부모에게 학대를 받았거나 버림받은 경우는 양상이 다르다. 오히려 ‘잘 죽었다’라고 생각하는 자녀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마음도 오래가지는 않는다. 이렇게 부모와의 갈등이 해결되지 않은 채 부모가 죽게 된다면 용서와 화해의 시간을 가질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죽은 사람은 어떻게 용서할 수 있는가? 알렌 휴 콜 박사의 책, 『굿모닝: 알렌박사가 말하는 슬픔치유』(윤득형 역)을 보면 친구 헨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아버지가 죽은 몇 주 후부터, 헨리는 자주 악몽에 시달렸다. 그러던 중 헨리는 그의 아버지를 용서하기 위해 기도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이런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용서는 우리가 고통당했던 불의한 일들을 잊거나, 눈감아 주거나, 축소하는 것이 아니다. 용서는 과정이고, 치유가 우선이다.
몇 달 전 오랜만에 8회기 대면 개인상담을 진행했다. 몇 해 전에 병으로 남편과 사별한 여성 내담자였다.
내담자는 처음 ‘억울하다’라는 표현을 많이 했다. 그 억울함은 남편의 죽음을 깊이 애도할 수 없게 만드는 큰 장벽이었다.
다음 주에 온 내담자는 그 말을 되새겨 보았다고 한다. 죽은 시아버지가 남편을 애도하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다는 말이 마음에 남았다고 한다. 용서의 시작은 ‘이해’이다. 그러기에 그녀는 용서의 과정에 들어선 것이다.
용서는 가해자의 참회 없이도 가능하다. 그러기에 죽은 사람도 용서가 가능하다. 용서는 전적으로 나를 위한 것이며, 치유의 과정이 전제되어야 하며, 점진적이어야 한다. 감정표현에 실패한다면, 감정적으로뿐 아니라, 관계적, 신체적, 행동적, 영적으로 파괴적인 잠재성을 지니게 된다. 그러기에 감정을 직면하고 슬픔과 고통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 중요하다. 감정의 깊은 곳으로 내려가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 면밀히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
목소리를 내지 못한 감정들은 더욱 강화되고 파괴적으로 되는 경향이 있다. 안전한 환경에서, 신뢰할 만한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럴만한 사람이 없다면, 그림 그리기, 시 쓰기, 음악 등 예술적인 방법으로 표현해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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