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얼 人· 禮 · 通]상실 치유컬럼 #18_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은 죽음
2022.04.15 조회수 1855

저희 홈페이지 '상실 치유컬럼'에 열 여덟번째 글이 발행되어 소개드립니다.

 

오늘 중대본(중앙재난안전대채본부) 발표에 의하면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되어 사적모임 및 영업시간 제한이 풀렸습니다.

약 2년여만에 일상으로의 복귀가 가까와졌으니 반가운 소식입니다.

 

다만 코로나19 펜데믹 기간동안 사망자수가 증가하였고 노년층의 외출 및 활동 제한으로 고독사의 비중도 늘었습니다. 

더불어 경제적 어려움으로 자살을 선택하는 극단적인 사례도 있습니다. 

 

이에 이번 컬럼에서는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은 죽음에 대해 알아보고 

이러한 죽음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드려야 하고 어떠한 애도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안내드립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컬럼을 참고하세요. 

 

- 본 상실 치유컬럼은 애도상담 전문가 윤득형 박사님의 기고로 홈페이지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봄이다. 세계적으로 혼란을 주었던 코로나 감염증 팬데믹도 이제는 엔데믹으로 전환되어 일반적으로 특정 지역에서 주기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질병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실제 오미클론 확진으로 일주일간 격리되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감기몸살을 앓은 것 같다고 한다.

또한, 정부의 방역 단계도 낮아지고, 많은 부분에서 제한이 풀려, 봄을 즐기기 위해 밖으로 나온 시민들의 모습에 활기가 느껴진다.

 

그러는 가운데서도 코로나 확진과 사망자 수는 증가하고 있다.

2022년 4월 현재 코로나로 인해 사망한 사람들의 수는 18,000명이 넘는다. 코로나로 인한 죽음은 격리된 죽음으로 가족들이 임종을 지키지 못하고, 장례도 제대로 못 치르고 화장하였기에, 유족들에게 남다른 슬픔을 남기게 된다. 이와 더불어 사회적 관심은 고독사로 향하게 되었다. 특별히 코로나로 인해 노년층들의 외출과 활동이 제한되다 보니 고독사가 늘었다.

 

코로나 전염병 확산 시기에 또 한가지 사회학자들이 주목했던 것은 자살률이다.

많은 사람들이 생업에 영향을 받았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자살의 원인 가운데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40~50대 가장들의 경제적인 압박감이다. 그러니 코로나로 인한 어려움은 자살률을 높일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코로나 시기 전년도인 2019년보다 250여 명 감소한 13,195명으로 조사되었다. 

 

 

 

 

 

 

 

미국에서 자살은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죽음(Disenfrenchised Death)이라 말한다.

그 말의 의미에는 ‘그렇게 죽어서는 안 된다’라는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다. 즉, 자살은 사회가 이를 방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죽음이다.

그렇다 보니 자살로 인한 죽음은 가족들에게 상실의 아픔뿐 아니라 수치심과 두려움, 분노와 죄책감을 안겨준다.

이러한 불명예와 수치감은 그들의 슬픔을 제대로 드러낼 수 없도록 만들고, 사회적 관계도 단절하게 만든다.

또한, 슬픔의 과정도 다른 죽음보다 더 복잡하고 긴 시간을 보내게 된다.

 

최근 남편을 잃은 지 10년 된 여성을 상담하였다. 이 여성은 첫 회기에 자살이라는 말을 선뜻 꺼내지 못했다.

그녀는 남편이 죽고 난 후 살던 집을 이사하고 오래 동안 다니던 교회도 옮겼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 다니고 있는 교회에서는 아무에게도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남편이 죽고 난 후 부도난 사업체를 이끌어야 했고, 힘든 시간을 이를 악물고 버티며 사업 재기에 성공했다고 한다.

그 사이 20대 아이들은 성장했지만, 아들은 두 번의 자살 시도와 우울증으로 힘들어하였고, 딸은 결혼 실패로 아이 하나를 데리고 홀로 살아간다.

이 모든 것이 남편의 죽음 영향이라고 생각하니 슬픔과 분노가 함께 올라온다고 말한다.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난 후에는 적절한 위로와 애도의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새로운 환경으로 옮기고 난 후 10년간 그녀는 아무에게도 이 말을 하지 못하였고, 자녀들은 물론이고 가족들 사이에 남편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하나의 금기였다.

그러니, 이 여성의 마음에는 답답함이 있었을 것이다. 위로받을 수도 없고, 애도할 수도 없었던 억눌린 그녀의 마음은 극에 치닿았던 것이다. 이제라도 10년 전의 사건을 꺼내어 마음을 털어놓고 싶었던 것이다. 10회기 상담 내내 그녀는 눈물을 보였다. 조금씩 자신의 감정을 내려놓고, 남편과의 관계를 재배치하며, 감사와 평안을 얻을 수 있었다.

 

자살은 남은 가족들에게 견디기 힘든 상처를 안겨준다.

자살은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죽음이다. 사회적으로뿐 아니라, 대부분 종교와 교단들에서는 자살한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이러한 분위기로 인해 대부분의 가족들은 온전한 사회생활과 가정생활이 힘들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많은 경우, 자살했다는 것을 숨기고 다른 병이나 사고로 인해 죽은 것처럼 주변에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를 피하게 되고, 누가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고 있는지를 가려가면서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이러한 복잡한 감정을 느끼는 가족들은 어떻게 애도해야 하는가?

중요한 것은 마음의 다양한 감정들을 표현해야 한다. 더불어, 주변에 신뢰할 만한 분들이 있어 이야기하면 좋겠지만, 훈련된 상담사를 찾는 것이 좋다.

이미 주변 사람들로부터 어설픈 위로의 말을 듣고 상처를 받은 분들도 계실 것이다. 하지만, 상담사들은 마음껏 울고, 소리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을 조성해 줄 것이다. 또한, 지지그룹을 통해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과의 교류도 중요하다. 

 

물론, 자살은 예방이 중요하다. 그렇지만, 어떻게 자살을 방지할 것인가와 함께 어떻게 남은 가족들을 돌볼 것인가도 함께 관심 가져야 할 중요한 사회적 문제이다.

자살유가족들이 슬픔의 과정을 잘 겪어내고,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자살한 사람과 가족들을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거나 죄인 취급할 것이 아니라, 자살한 사람이 겪었을 아픔과 고통을 이해하고 긍휼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또한 가족들도 슬픔을 표현할 권리가 있음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미국에는 자살유가족들이 자살예방을 위한 캠페인을 벌이는 경우도 많다.

자살한 원인에 따라 어떤 이들은 학교폭력 예방과 근절을 위해 활동하기도 하고, 외로운 이들을 위해 친구가 되어주는 활동을 하기도 한다.

우리가 함께해야 할 것은 바로 의미 있는 활동을 위해 헌신한 이들을 지지하고 격려하고 동참하는 것이다.

또한, 그들이 겪는 삶의 아픔을 듣고, 슬픔을 위로하고, 건강한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동반자의 역할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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