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메모리얼파크의 상실 치유컬럼입니다.
애도한다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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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한다는 것은 상실로 인해 겪게 되는 감정을 마주하고 그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과정이다. 감정을 숨기거나 억누르게 될 때 애도의 과정이 지연되고 나중에 걷잡을 수 없는 과정을 경험하게 될 수 있다. 상실로 인한 슬픔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히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애도의 과정을 잘 겪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서 '겪는다'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애도의 기본적인 속성 때문이다. 즉 애도는 '극복'의 개념이 아니다. 감정을 마주하고, 겪으며, 어루만져 주어야 하기에 그렇다. 또한 애도는 상실로 인해 발생한 지속적인 슬픔과 공허감을 안은 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배우는 과정도 포함된다. 그러기에 감추어 둔 채 시간만 흐른다고 '극복'되는 것이 아니다.
애도는 크게 비탄(Grief)과 애도(Mourning)의 과정으로 구분할 수 있다. 비탄은 상실 직후부터 2~3주 혹은 2~3달 사이에 겪게 되는 다양한 반응을 의미한다. 특별히 상실로 인한 충격과 그 충격에 대처하기 위한 자기방어로서의 무감각,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믿을 수 없는 혼란을 경험한다. 사람들 대부분은 상실 초기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라는 표현을 자주 한다. 그만큼 현실을 인지할 수 있는 기능이 저하된 상태이며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시기이다.
이러한 비탄의 시기가 지나게 되면 비로소 애도의 과정으로 들어서게 된다. 콜(Allan Hugh Cole)은 "애도(Mourning)는 비탄의 경험으로부터 시작된다"라고 말한다. 애도의 과정은 감정적인 노력과 삶의 새로운 관점이 형성될 수 있도록 상실한 대상과의 관계가 점차 변해가는 과정이라 말할 수 있다. 즉 애도는 지속적으로 상실을 겪어 나아가는 방식이다. 애도는 비탄의 과정처럼 저절로 일어나는 과정이 아니기에 사별자의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애도의 과정은 생각보다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
최근 상담하고 있는 한 내담자는 사랑하는 두 사람을 몇 년 차이로 잃었다. 그동안 내담자는 정신과 전문의를 비롯하여 트라우마 전문상담가, 심리상담가 등 한국에 유명하다는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여러 회기 상담을 받았다고 한다. 첫날 내담자는 자신이 만나고 겪었던 상담가들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내게 몇 가지 부탁의 말을 하였다. 그중 세 가지만 말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신의 학교 및 배경으로 인해 선입견 갖지 않기 및 학교에 관해 묻지 말 것. 둘째, 매주 자신이 원하는 주제로 상담해 줄 것.
이렇게 세 가지 요구사항은 이해할만하였다. 그는 그동안 상담의 자리에서 판단 당하는 느낌이 들었던 때가 있었을 것이며,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제대로 다 하지 못했을 것이고, 죽음 사건에만 치우친 나머지 상담자는 죽은 이들과 자신의 관계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상담이 진행되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내담자는 상담자로부터 오해될 만한 이야기를 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나는 내담자의 요구에 동의하며 선입견 없이 상담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죽음 사건 이전부터 시작하여 내담자가 원하는 주제의 방향대로 상담해 본 경험은 없지만 요청한 대로 해보겠다"라고 말했다. 대신에 그렇게 상담을 진행하고 난 후에는 상담자의 의견에 따라 상담을 진행하기로 동의하였다.
그렇게 몇 회기를 상담하고 난 후에 느낀 것이 있다. 내담자는 상실한 대상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과 그들의 관계, 그리고 관계성 속에서 경험한 것들을 객관적으로 정리하고 싶었던 것이다. 자신의 인생에 상당한 부분을 차지했던 그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내담자는 군데군데 비어 있던 경험의 기억들을 메꾸어가며 자신을 표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다시금 자신의 감정과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참 지혜로운 내담자이다. 그것은 다른 상담가들과의 상담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라고 생각된다. 그는 많은 상담 경험을 통해 상담이 무엇인지를 이해한 것이다.
콜 박사는 '애도의 좋은 방법'에 관해 말하면서 첫 번째로 필요한 것은 '재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자신이 겪었던 일이 무엇인지 신뢰할 만한 사람 혹은 상담사에게 반복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라 하더라도 자신의 감정과 마주하기 위해서는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 단순히 과거를 정리하는 차원이 아니라 그 당시에 느꼈던 감정을 다시금 느끼고 표현하는 과정은 애도의 여정을 시작하는 단계에 꼭 필요하다.
사람들은 대개 '그렇게 힘들었던 일을 왜 다시 꺼내 더 힘들게 하느냐'라고 말하며 회피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야기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이 했던 일과 하지 못했던 일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으며, 행복하고 즐거웠던 경험을 기억하고 미안한 마음이나 죄책감을 덜어낼 수 있는 기회도 될 수 있다.
그는 나와의 상담이 마지막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러 상담의 과정들을 마무리하고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고 싶은 마음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보자면, 나와의 상담이 마지막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왜냐하면 언젠가 또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감정의 동요를 경험하는 어떤 순간이 또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홀로 견뎌내야 하는 과정도 필요하겠지만 자신의 마음을 들어주고 공감할 수 있는 누군가와의 따뜻한 시간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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