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메모리얼파크의 상실 치유컬럼입니다.
슬픔의 라르고 |
2019.05.20
조회수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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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음악시간에 배운 빠르기말이 있다. 악보를 보면 대개 첫 마디 위 악상 기호와 함께 빠르기말이 표기되어 있다.
슬픔에도 빠르기가 있다면 어떤 빠르기말을 사용할 수 있을까? 사별 이후 겪게 되는 슬픔은 일반적으로 ‘걷는 속도로 천천히’라는 표현의 안단테도 어울릴 것 같지만, 사실은 라르고가 가장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해 본다.
이탈리아어로 라르고(largo)는 라틴어 라르구스(largus)에서 나온 말로 ‘폭넓게’ ‘느릿하게’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동시에 라르고는 ‘극히 표정 풍부히’ 연주하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기에 슬픔의 특성 가운데 두 가지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둘째, 슬픔(grief)은 단순히 ‘슬픈’(sad) 감정이 아니라, 외로움, 죄책감, 후회감 등 모든 감정을 포함한 슬픔 혹은 비탄이다. 라르고는 ‘표정 풍부히’ 연주하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애도의 과정도 마찬가지다.
나는 내담자가 자신의 감정을 탐색하고 그 감정들을 최대한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왔다. 또한 마음속에서 맴돌고 있는 억눌려진 감정의 실체를 파악하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친구들을 만나 어머니와의 사별을 이야기 할 기회가 있었지만, 친구들은 단 5분도 집중해서 들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실상 일상의 평범한 대화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10분 이상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슬픔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다양한 감정들 중 하나일 뿐이다. 감정은 좋고 나쁜 감정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방식에 따라 차이가 있을 뿐이다. 즉, 감정을 건설적인 방법으로 다루냐 아니면 파괴적인 방식으로 다루냐가 중요하다.
종종 내담자들이 묻는다. 자신들이 겪는 슬프고 고통스러운 감정들이 얼마 동안 지속될 것인지 궁금해 한다.
하지만, 그러한 숨겨지고, 억눌리고, 표현되지 않은 감정들은 우리의 삶에서 언제가 다른 모습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 또한 다른 상실을 경험할 때, 애도되지 못한 이전 상실의 경험이 더해져 더 힘든 과정을 보낼 수도 있다.
그러니 애도의 과정을 잘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앞서 언급한 어머니를 잃은 남성이 내게 한 가지 질문을 했다.
“좋은 애도의 과정을 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기왕이면, 앞에 모셔만 놓지 마시고, 식사하시면서 대화를 나누시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내담자는 편안한 마음으로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라도 어머니와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을 많이 표현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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