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좋은 죽음이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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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후 코로나19로 인해 ‘죽음’과 관련된 뉴스를 자주 접하고 있습니다.

초연결 시대인 만큼 각국의 확진자수와 사망자수도 쉽게 알 수 있고요. 이에 자연스레 나라별 대처능력도 비교하게 됩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총 누적사망자수가 1700여명이지만 미국은 540,000명을 넘어섰습니다. (2021.03.23 기준)

인구비율을 감안하더라도 엄청난 숫자입니다. 이는 제1-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 전쟁 전사자를 모두 합한 것보다 많은 수치라고 하니 정말 재앙이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 코로나19 세계현황 - 2021.03.23 기준 ]

 

 

 

층층이 쌓여가는 관들 <독일, AFP>

 

 

 

한 달만에 만장된 묘지 <브라질, AFP>

 

 

 

14세기에 유행했던 흑사병은 약 7년(1346-1353년)간 7500만명 이상이 사망했습니다. 당시 세계인구가 약 4억 5천만명이었다고 하니 인구 대비 엄청난 규모라 할 수 있지요. 한두 집 건너 한 집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면 어떤 심정일까요? TV로 보는 이웃나라가 상황이 아닌 바로 내 이웃, 내 가족 친지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생을 마감하면 정신적 팬데믹이 올 것 같습니다. 슬픔, 분노, 우울, 두려움 등의 감정에 빠르게 감염되어 헤어나오기 힘들게 되는 것이지요. 하루에도 몇 천명씩 확진자가 나오는 미국, 브라질 등의 나라에선 흑사병 시절의 얘기가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

 

 

 

 

 

 

‘죽음’, 사실 우리 모두는 알고 있습니다.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요. 하지만 어떻게 죽을지는 깊이 생각해보지 않습니다. 먹고 사느라 바쁜 이유도 있겠지만 죽음은 내 의지와 선택이 아닌 운과 환경의 지배를 많이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노환이나 병사가 아닌 심장마비, 교통사고, 코로나19처럼 감염병 등으로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 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내 죽음의 종류를 결정하는 ‘사망진단서’ 또한 나는 알 수 없습니다. 내 죽음이 자연사일지 외인사일지요.

 

병사, 교통사고, 추락, 익사, 중독, 화재, 자살, 타살 등 죽음의 종류는 많습니다. 그 중 좋은 죽음은 무엇이고 나쁜 죽음은 무엇일까요? 자연사는 좋은 죽음이고 그 외 나머지는 나쁜 죽음일까요? 아니면 자살처럼 내 의지로 선택한 죽음이 좋은 죽음일까요? 아니면 낙태로 죽는 아이나 고독사로 죽음을 맞이 하는 독거노인들처럼 관심받지 못한 죽음은 나쁜 죽음일까요?


웰다잉 관련 글을 쓰다 보면 과연 ‘좋은 죽음’은 무엇일까? ‘아름다운 죽음’의 정의는 무엇일까?하고 생각해보게 됩니다. 참 답을 내기 어려운 명제입니다. 저희 분당메모리얼파크 홈페이지를 통해 상실치유 컬럼을 기고해주시는 윤득형 박사님의 저서 ‘죽음의 품격’에서는 ‘세상에 좋은 죽음, 나쁜 죽음 따위는 없다’고 합니다. 죽음은 그냥 죽음 그 자체이지 좋다 혹은 나쁘다라고 얘기 할 것이 아니라고요. 즉 삶을 죽음과 연결 지을 때 죽음도 ‘좋다’, ‘나쁘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지 죽음 자체로 좋고 나쁨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결국 죽음은 삶의 연장선에 있고 삶이 없다면 죽음도 없기에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좋은 삶 끝에 좋은 죽음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지난 2015년 ‘죽음의 질’ 지수 평가에서 1위를 차지한 영국에서 좋은 죽음(Good Death)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 하였습니다.

 

“좋은 죽음(Good Death)이란, 익숙한 환경에서 존엄과 존경을 유지한 채, 가족, 친구 등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고통 없이 사망에 이르는 것이다.”

 

영국은 의료시스템 뿐만 아니라 완화치료시스템이 잘 갖추어진 나라입니다. 즉 ‘병을 이기는 것’ 뿐만 아니라 ‘병과 함께 사는 것’에 대해서도 포커스를 맞춰 균형되게 발전시켜왔습니다. 그렇기에 호스피스 시설과 가정으로 지원하는 호스피스 지원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지요.  

우리나라의 경우 호스피스는 ‘치료에 실패한 사람들이 선택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영국에서는 그 인식의 결이 다릅니다. 치료에 대한 실패나 포기가 아닌 무리한 수술,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자기 결정권에 의한 선택이지요.  
사실 의료진이나 환자들이 ‘병’을 이겨야 할 대상,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다만, 회복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남은 인생을 고려하면 어떤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인지는 결국 환자와 보호자의 몫으로 남습니다.

 

주위 어르신들이 가끔 말씀하십니다. 딱 일주일만 앓다가 죽었으면 좋겠다고요. 갑자기 죽으면 가족들이 경황이 없을 것 같고 그렇다고 아파하며 고통스럽게 오래 살기는 원치 않는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현실은 다릅니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로 의식없이 생명을 연장하다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떠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족들 또한 연명치료 기간이 길어질수록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으로 삼중고를 겪게 되지요. 병사가 아닌 사고사인 경우는 더 황망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더욱 죽음을 미리 생각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누구나 죽는다는 진리처럼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기 때문이지요. 언제가는 결정을 해야 할 때가 옵니다.

 

이를 위해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고, 내가 주인공이지만 내가 없는 장례식을 치를 가족들을 위해 ‘사전장례의향서’를 작성합니다. 이때 장사방법은 납골당으로 할지 자연장으로 할지 좀 더 세세하게 결정하면 가족들의 부담을 덜 수 있습니다. 또한 갑자기 세상을 떠날 수 도 있기에 평상시에 가족들에게 남길 편지나 유언장을 써놓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출처 : silvercentuy

 

 

 

 

우리나라에서 실시한 ‘좋은 죽음에 대한 인식조사’에서 좋은 죽음은 크게 3가지로 조사되었습니다. 첫째 담담하게 맞이하는 죽음, 둘째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는 죽음, 셋째 자신이 결정하는 죽음입니다. 여기서 ‘자신이 결정하는 죽음’은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의존하지 않고 존엄함을 지키면서 맞이하는 죽음을 말합니다. 

 

결국 우리가 바라는 인생의 마지막 장면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 없이 온전하게 정신을 유지하면서 평안한 모습으로 가족들에 둘러싸여 좋은 삶으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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