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메모리얼파크의 상실 치유컬럼입니다.
애도의 광야에 거하기를 두려워 말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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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애도심리상담 학자인 알렌 울펠트(Alan Wolfelt)는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치료(cure)가 아닌 동반(companioning)이라고 말한다. 그는 동반하기를 위한 열한 가지의 원리를 이야기하면서 사별자들의 마음을 보듬어 줄 수 있는 바른 위로의 방법을 제시한다. 그 중에 한 가지는 슬퍼하는 사람의 영혼의 광야 상태를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이는 문제점을 찾아야 한다는 책임감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슬픔의 감정을 없애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태를 인정해주라는 말이다.
여러 해 애도상담을 가르치고 훈련하면서 종종 보게 되는 상담사들의 실수는 바로 내담자에게 뭔가 해결책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는 강박감을 갖는데서 비롯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고 난 후 겪게 되는 다양한 감정과 마음의 고통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것은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상실은 몸과 마음과 영적으로 혼란한 상태를 경험케 한다.
이러한 상태에 있는 사람이나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 모두는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러기에 빠른 회복이나 해결이 우선인 것인 양 착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때 필요한 것은 뭔가 해결해 줘야 한다는 생각 없이 영적 고뇌를 겪는 광야의 길을 함께 걸어 줄 수 있는 동반자이다.
‘영혼의 광야 상태’란 임계적인(liminal) 공간을 말한다. 라틴어의 리미나(Limina)는 문지방을 뜻하는 단어로 이도저도 아닌 중간 혹은 사이의 공간을 말한다. 임계적 공간은 많은 사람들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영적 공간이다. 하지만, 사별 이후 반드시 경험하게 되는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사별자들은 혼란된 감정을 경험한다. 그동안 믿어왔던 가치와 신념의 혼란을 겪는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질문하게 된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 회의를 느끼기도 한다. 이렇듯 깨어진 신념, 가치, 의미 등을 다시 세우기 위한 도움은 문제해결이나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기술이나 처방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현대 사회에 사는 우리들은 빠른 문제해결을 원한다. 임계적인 공간처럼 구름 속을 걷는 모호함보다는 밝고 선명한 빛 아래 걷기를 원한다. 고통, 슬픔, 두려움, 모호한 감정들과 같은 상실이 불러오는 일반적인 증상들을 피하고 싶어한다. 심지어 슬픔을 싸워 이겨야 할 극복의 대상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러기에 상실의 슬픔 가운데 있는 이들을 돕기 원하는 사람들이 종종 마주하는 유혹은 바로 혼란의 문지방으로부터 속히 건져내고자 하는 욕구이다.
해결을 위한 욕구는 어쩌면 사별자를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이 느끼는 고통으로부터 속히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일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바쁘게 지내라” “참고 지내라” “잊어라” “힘내라” 등의 말을 통해 빠른 회복을 기원한다. 하지만 이러한 말들은 애도를 회피하게 만들고, 보다 복잡한 애도의 과정으로 이끌게 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 자리는 더 이상 이전과 같은 공간이 아니다. 사별자는 새로운 자신의 정체성에 적응해야하며 고인이 없는 새로운 상황에서 겪게 되는 외적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이를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영적 광야의 시간은 사별자들에게 새로운 의미를 찾고 새로운 자아를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 준다.
역사적으로, 인생의 여정 가운데 어떤 중요한 전환기에 섰던 사람들은 광야의 시간을 경험했던 것을 볼 수 있다. 40일간의 사막생활, 산의 정상에 오르는 수행, 홀로 대양을 여행하는 등의 경험들을 통해 스스로를 광야 속으로 몰아넣었다. 사별 슬픔으로 인해 고통당하고 있는 사람들도 이와 같은 광야를 경험하게 된다. 어딘지 모르는 광야의 시간은 때로는 두려움을 가져다준다. 애도의 과정은 빠져 나오지 못할 것 같은 슬픔의 긴 터널과도 같다. 하지만 이러한 광야에 거하며 겪는 불편함은 나름 큰 의미가 있다. 도저히 일상의 삶 속으로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 같기에 본능적으로 빠른 회복의 길을 찾으려고 애써 보지만 광야의 시간을 존중하고 통과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서서히 다르게 변화되는 자신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도저도 아닌 사이에 낀 공간에 있는 것은 불편하다. 절망되고, 우울하고, 불안하다. 하지만 그 알 수 없는 불확실함과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한 급한 행동보다는 그 과정을 신뢰하고 기다리는 것이 더 지혜로운 일이다. 사별슬픔의 고통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 회피하거나 묻어 두려는 것은 좋은 애도의 방법이 아니다. 영혼의 광야 길에서 두려움과 마주하며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을 때 치유가 시작된다. 이를 돕고자 하는 사람들은 급히 벗어나도록 처방을 내리거나 어설픈 답을 주는 대신 묵묵히 곁에서 함께 걷고 때로 손잡아 주는 것이 필요하다. 어디에 서 있는지 모르는 공간의 체험, 그것은 반드시 겪어야 할 사별 슬픔의 한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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