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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의 과업 (고인 없는 삶에 적응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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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워든(William Worden)은 애도의 과업(Task theory)을 주창한 미국 내 애도상담계에서는 유명한 학자이다. 그의 이론은 단계(Stage)이론이나 국면(Phase)이론과는 구별되며, 상실을 잘 겪어 나아가, 고인 없는 삶에 적응하여 살기 위해 사별자는 반드시 네 가지 과업을 완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단계적으로 거쳐야 할 과제는 아니지만, 적어도 첫 번째 과업은 가장 우선적인 과업임에 틀림없다.
첫 번째 과업은 상실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즉, ‘그는 죽었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완전히 직면하는 것이다. 상실의 현실을 수용하는 것의 반대는 현실을 ‘부인’하는 것이다. 믿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는 일반적인 반응이며, 상실의 큰 충격을 완화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과도하거나 오랜 시간 지속된다면 문제가 된다. 또 다른 현실 수용의 반대는 상실의 의미를 부정하거나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몇 해 전 가까운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친구의 마음이 어떤지 물어보니,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한다. 그에게는 아버지에 대한 좋은 기억이 없다. 그의 아버지는 젊은 시절 외도와 도박으로 가정을 버리다시피 했고 나이가 들어 어머니가 사는 집에 들어와 살고 있었다. 오래전 일이지만 그런 아버지의 암 투병과 죽음은 친구에게 있어서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 느꼈던 것이다. 이는 죽음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부인이나 과소평가는 두 번째 과업인 감정을 표현하는 단계로 이어지는 것을 가로막게 된다.
두 번째 과업은 사별슬픔의 고통을 겪으며 애도 작업하기이다. 상실에 대해서 모든 사람이 동일한 고통이나 방법으로 애도를 하는 것은 아니다. 깊은 애착관계에 있었던 사람을 잃었을 때 느끼는 고통의 깊이는 다를 수도 있다. 사별로 인해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감정을 동반한 고통을 직면하는 것은 애도의 과정을 잘 겪을 수 있도록 돕는다. 감정을 회피하는 일은 오히려 애도의 과정을 지연시킬 수 있다. 이러한 사별 슬픔의 고통을 표현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사회적인 시선이다. 흔히 울면 “울지 말라”하고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고 말하면서 슬픔을 억제시키는 것이 우리의 문화이다. 사별로 인한 다양한 감정들, 특별히 분노, 죄책감, 수치심과 같은 감정들은 억눌리거나 표현되기 힘들기에 이를 돕는 전문적인 상담이 필요하다.
세 번째 과업은 고인을 잃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다. 적응에는 외적, 내적, 영적적응이 있다. 외적 적응은 역할에 대한 적응이다. 배우자 상실의 경우, 남성과 여성이 평소 해오던 다른 역할들에 적응하는 일은 상실 초기에 힘든 과정이다. 내적적응은 정체성에 대한 적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일부 연구에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타인들과의 관계성이나 타인들에 대한 돌봄을 통해서 정립하는 여성들에게 사별은 중요한 대상을 잃어버리는 것 뿐 만 아니라, 자신을 상실하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라 말한다. 영적적응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인해서 도전받게 되는 세계관, 삶의 가치와 의미, 신과의 관계성에 대한 문제를 말한다.
네 번째 과업은 고인의 감정적 재배치와 더불어 삶을 살아나가는 일이다. 이는, 정서적인 삶을 살아나가는 데 고인을 위한 마땅한 공간을 배정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아이를 잃은 부모들을 위한 과업을 생각한다면, 부모들로 하여금 아이들과 연결되는 생각과 기억들이 지속되는 관계를 유지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효과적인 내적 혹은 외적인 공간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면, 다시금 자신의 인생을 위한 투자와 설계를 할 수 있다.
감정적 재배치에 효과적인 것은 의례이다. 콜(Allan Huge Cole)은 워든의 이론을 수용하여 자신만의 새로운 이론을 전개하면서, 좋은 애도를 위한 다섯 가지 관점을 제시한다: 상실을 받아들이기, 상실을 감내하기, 상실에 적응하기, 상실을 재배치하기, 상실과 함께 머물기(필요하다면). 즉, 콜은 워든이 제시한 마지막 과업의 감정적 재배치를, 감정적 재배치와 공간적 재배치라는 두 개의 과업으로 나눈다. 콜에게 있어서, 상실을 재배치하는 것은 마음 속 어느 한편에 고인을 기억하는 공간을 두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고인에 대한 생각이 결코 삶에 있어서 사별자의 감정을 압도하지 않도록 두면서, 언제라도 고인을 추억할 때 꺼내어 추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콜이 제시하는 다섯 번째는, 상실과 함께 머물기(Sojourning)이다. “머물기”는 어딘가를 방문하고 시간을 보내는 것을 의미하며, 휴식과 회복을 내포하는 말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상실한 대상과 함께 “머물기”는 좋은 애도를 돕는다. 이를 통해, 상실한 대상과 나누었던 추억들을 불러일으키며, 이러한 추억을 떠올리는 다양한 작업을 통해 감정적, 공간적 재배치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 콜이 제시하는 것은 사랑했던 사람이 의미 있게 생각했던 장소 방문하기와 의미 있게 생각했던 활동에 동참하기가 있다. 또한, 걷기, 조용한 장소에 앉아 있기, 시골길을 운전하는 것, 무덤을 방문하거나 함께 공유하였던 물건이나 사진들을 보는 것을 통해 “머물기”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더불어, 다양한 신앙 의례들 (기도, 성경읽기, 예배, 그리고 성찬) 또한 상실에 머물기 위한 좋은 예로 제시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사별 애도의 과정은 개인마다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한다든지 자신이 이전에 겪은 다른 상실과 비교하지 않고, 현재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면서 자신만의 애도의 과정을 겪어 나아가는 것이다. 매일 무덤이나 납골당에 찾아가 고인을 기리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주변 사람들이 “언제까지 그러고 살 거냐?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고 말하더라도 자신의 방식대로 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까운 박물관, 카페, 음식점, 공원 등 조용히 고인을 추억할 만한 공간에서 머무는 과정은 분명 좋은 애도를 촉진할 것이다.
『죽음의 품격』 (윤득형, 도서출판 늘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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